‘농슬라’ 존디어(DE)의 180년 대서사시: 대장간 쟁기에서 자율주행 AI 플랫폼까지

'농슬라' 존디어(DE)의 180년 대서사시

미국 일리노이주의 작은 대장간에서 시작된 한 기업이 전 세계 식량 안보를 책임지는 ‘농업계의 테슬라‘, 이른바 ‘농슬라’로 불리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한 기업 성장을 넘어 인류 농업 현대화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존디어(John Deere: DE)는 하드웨어 제조사를 넘어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다루는 테크 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혁신의 이면에는 시장 점유율 하락이라는 위기와 강력한 도전자들의 추격, 그리고 투자자들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리스크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본 분석에서는 존디어의 탄생부터 미래 혁신 전략, 그리고 투자 관점에서의 리스크 관리까지 구체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심층적으로 고찰해보겠습니다.


존디어의 탄생과 성장의 변곡점: 신뢰가 빚어낸 180년의 유산

강철 쟁기라는 혁명적 시작 (1837~1900년대 초)

존디어의 성공 신화는 1837년, 대장장이 존 디어가 발명한 ‘자기 세척 강철 쟁기(Self-Polishing Steel Plow)’에서 기인합니다. 당시 미국 중서부의 비옥하지만 끈적끈적한 토양은 기존의 나무나 주철 쟁기로는 경작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흙이 쟁기에 달라붙어 작업을 멈추고 긁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존 디어는 버려진 제재소 톱날을 연마하여 매끄러운 강철 쟁기를 만들었고, 이는 토양을 부드럽게 가르며 스스로 닦여 나가는 혁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 존디어의 성장을 이끈 핵심은 ‘철저한 품질 우선주의’였습니다. 창립자 존 디어는 “내 이름이 새겨진 제품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제품에는 절대 내 이름을 넣지 않겠다”는 경영 철학을 고수했습니다. 이러한 신뢰는 1868년 ‘디어 앤 컴퍼니(Deere & Company)’ 법인화 이후에도 이어져, 존디어가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필수 동반자로 자리 잡게 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트랙터 시대의 개막과 시장 지배력 강화 (1918~1950년대)

말과 소가 끌던 농기구가 엔진의 힘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20세기 초, 존디어는 또 한 번의 결단을 내립니다. 1918년, 워털루 가솔린 엔진 회사를 인수하며 ‘워털루 보이(Waterloo Boy)’ 트랙터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존디어가 단순한 도구 제조사에서 ‘동력 기계 전문 기업’으로 진화하는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특히 1930년대 경제 대공황 당시, 존디어는 파산 위기에 처한 농부들에게 외상 대금 상환을 연기해주고 끝까지 지원하는 경영적 결단을 내렸습니다. 당장의 이익보다 고객인 농부와의 상생을 선택한 이 결정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존디어에 대한 강력한 브랜드 로열티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50년대에 이르러 전 세계 농기계 시장의 압도적인 1위로 올라서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농슬라’로의 진화: 데이터와 AI가 주도하는 정밀 농업 (2010년대~현재)

정밀 농업(Precision Agriculture)의 선구자

존디어가 ‘농슬라’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입혔기 때문입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존디어는 단순한 트랙터 판매를 넘어 ‘데이터 플랫폼’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운영 센터(Operations Center): 클라우드 기반의 이 플랫폼은 전 세계에 보급된 존디어 장비로부터 토양 습도, 비료 농도, 수확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합니다.

씨앤스프레이(See & Spray™): 2017년 블루 리버 테크놀로지를 인수한 후 선보인 이 기술은 AI 카메라가 잡초와 작물을 실시간으로 구분하여 잡초에만 정밀하게 제초제를 살포합니다. 이는 농약 사용량을 최대 70~80%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농가의 비용 절감과 환경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습니다.

 

완전 자율주행 기술의 상용화

2022년 CES에서 존디어는 운전석에 아무도 타지 않은 채 스마트폰 조작만으로 24시간 작업이 가능한 8R 자율주행 트랙터를 선보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원격 제어를 넘어 6쌍의 스테레오 카메라와 딥러닝 기술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고도의 AI 기술이 집약된 결과물입니다. 테슬라가 도로 위에서 자율주행을 구현하듯, 존디어는 거친 들판 위에서 이를 구현해낸 것입니다.


경영자의 경영 마인드: 상생과 미래를 향한 과감한 투자

현재 존디어를 이끄는 존 메이(John May) 회장의 경영 마인드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지속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는 농업 인구 감소와 식량 수요 증가라는 모순적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 혁신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믿습니다.

R&D 중심 경영: 존디어는 매년 매출의 약 5~7% 이상을 연구 개발비로 쏟아붓습니다. 이는 단순 제조업체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이며, 경쟁사인 CNH나 AGCO보다도 앞선 행보입니다.
M&A를 통한 생태계 확장: 2021년 베어 플래그 로보틱스 인수, 2024년 스페이스X와의 스타링크 협업 등은 경영진이 농업의 미래를 ‘연결성’과 ‘자동화’로 보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위기와 도전: 하락하는 점유율과 강력한 경쟁자들

시장 점유율 하락의 실체적 원인 분석

하지만 최근 존디어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2025년과 2026년 실적 전망에 따르면, 존디어의 대형 농기계 부문 매출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농가 소득의 양극화와 구매력 저하: 글로벌 곡물 가격 하락으로 농민들의 실질 소득이 감소하면서 수억 원대에 달하는 고가의 존디어 신제품 수요가 급감했습니다.

관세 및 무역 장벽: 미국 내 대선 국면과 맞물린 강력한 관세 정책은 해외 생산 비중과 부품 공급망이 복잡한 존디어에 약 12억 달러 이상의 추가 비용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중고 시장의 역습: 신제품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자 딜러들의 중고 재고가 쌓이고, 농부들이 신제품 대신 중고 장비를 선택하면서 점유율 잠식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라이벌들의 공세: CNH, 구보타, 그리고 한국의 대동

존디어의 아성을 위협하는 경쟁자들의 전략도 매섭습니다.

CNH Industrial: ‘레이븐 인더스트리’ 인수를 통해 존디어와 대등한 수준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유럽과 남미 시장에서 강력한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구보타(Kubota): 중소형 트랙터 시장의 절대 강자로, 최근 북미의 취미농(Hobby Farmer) 시장을 장악하며 대형 시장으로의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습니다.

대동(Daedong): 한국의 자존심 대동은 존디어와의 20년 제휴를 끝내고 독자 행보에 나섰습니다. 북미 브랜드 ‘카이오티(KIOTI)’를 앞세워 60마력 이하 시장에서 점유율 10%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2026년 완전 무인 트랙터 출시를 통해 존디어의 하이엔드 시장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의 리스크 관리 및 향후 전망

핵심 투자 리스크: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존디어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은 다음의 세 가지 리스크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순환주기(Cyclicality) 리스크: 농기계 산업은 전형적인 경기 순환 산업입니다. 현재는 고점 이후 하강 국면에 진입해 있어, 저점이 어디인지 파악하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수리권(Right to Repair) 분쟁: 존디어가 장비 수리를 자사 서비스 센터로만 제한하면서 발생한 법적 논쟁은 브랜드 이미지 실추와 추가 규제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기술 전환 비용: 내연기관에서 전기 및 수소 트랙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전환 비용이 단기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미래 가치: 구독 모델로의 체질 개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디어의 미래는 긍정적입니다. 존디어는 하드웨어를 한 번 팔고 끝내는 모델에서, 자율주행 기능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형태로 제공하고 월 구독료를 받는 ‘SaaS(Software as a Service)형 농업 모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기 변동에 취약한 매출 구조를 안정적인 현금 흐름으로 바꾸는 신의 한 수가 될 것입니다.


식량 안보의 수호자, 그 이상의 가치

존디어의 180년사는 끊임없는 파괴적 혁신의 기록입니다. 대장간의 쟁기가 강철이 되고, 엔진이 달리고, 이제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밭을 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경쟁자들의 거센 추격과 거시 경제의 불안정성이 위협 요소로 존재하지만, 존디어가 구축한 ‘데이터 생태계’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습니다.

투자자들에게 존디어는 단순한 제조주가 아닙니다. 인류 생존의 필수 요소인 ‘식량’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하게 만드는 ‘플랫폼 기술주’로 접근해야 합니다. 2026년의 저점을 통과하며 더욱 견고해질 존디어의 자율주행 생태계는 다시 한번 글로벌 1위의 위엄을 증명할 것입니다.


참고자료

CNBC, “The Future of Farming: How John Deere is Using AI to Feed the World” (2025), https://www.cnbc.com/

한국경제신문, “K-농기계 대동의 반격, 북미 시장 점유율 10% 도전” (2025.12), https://www.hankyung.com/

Bloomberg Intelligence, “Agricultural Machinery Outlook 2026”, https://www.bloomberg.com/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카길이 주도하는 스마트 농업과 블록체인 기반 식량 유통망의 미래 혁신

전 세계 곡물시장 40% 이상 점유한 ‘카길’이 기침을 하면 식탁이 흔들린다

기후금융 수혜주 TOP 3: 미국 농업 기업 재무제표 SWOT 분석 및 실전 투자 전략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