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거대 금융사들이 블록체인을 활용해 주식 결제 시간을 ‘즉시’로 단축하고 24시간 거래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소식은 글로벌 금융 시장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디지털 자산과 결제 시스템의 혁신을 통해 시장의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반면, 한국은 노동 문제와 시스템의 경직성으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본 글은 일본의 혁신적인 24시간 거래 시스템 분석과 고가 주식의 토큰화 방안, 그리고 한국 증권 시장이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대응책을 심도 있게 모색하기 위한 목적을 가집니다.
일본 금융의 거대한 실험: 5대 연합과 블록체인 혁명
일본 금융계를 지탱하는 미쓰비시UFJ, 미쓰이스토모, 미즈호 등 3대 메가뱅크와 노무라홀딩스, 다이와증권 등 대형 증권사 2곳이 손을 잡았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바로 ’24시간·즉시 결제’가 가능한 새로운 주식 거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업무 제휴를 넘어선, 일본 금융 시장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블록체인 기반의 결제 프로세스 혁신
기존 주식 거래 시스템은 매매 체결 후 실제 결제(현금과 주식의 교환)가 이루어지기까지 2영업일(T+2)이 소요되는 구조였습니다. 일본은 이를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해결하고자 합니다. 핵심은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입니다.
투자자의 흐름: 투자자는 은행 계좌의 현금을 법정통화 연동형 스테이블코인으로 교환합니다.
거래 및 결제: 증권사를 통해 매수 주문을 내고 체결되는 즉시, 블록체인상에서 코인과 디지털화된 증권(권리)이 동시에 교환됩니다.
결과: 기존 예탁결제원이나 은행 간 송금망을 거치며 발생했던 시차와 비용이 사라지고, ‘즉시’ 결제가 완료됩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단순히 속도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결제 불이행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자금의 유동성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2월 중 금융청 신고를 마치고 실증 실험에 돌입하여 수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왜 지금 ’24시간 거래’인가? 글로벌 자본 유치의 생존 게임
일본이 이토록 급진적인 변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갈라파고스화’에 대한 공포와 글로벌 자본 유치에 대한 절박함이 깔려 있습니다.
미국 시장의 변화와 T+1 결제
미국은 이미 2024년 5월부터 주식 결제 주기를 T+2에서 T+1(거래 다음 날 결제)로 단축했습니다. 이는 시장의 유동성을 높이고 투자자의 자금 회전율을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야간 거래(Overnight Trading)’ 시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사실상 24시간 거래 체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일본의 위기감과 대응
일본 금융당국과 업계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을 유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시차로 인해 도쿄 시장이 닫혀 있는 동안 발생하는 글로벌 이슈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은 큰 약점입니다. 따라서 365일 24시간 멈추지 않는 시장을 만들어, 전 세계 어디서든, 언제든 일본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도쿄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사수하기 위한 ‘방어전’이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위한 ‘공세’입니다.
고가 주식의 토큰화: 유동성 공급의 핵심 열쇠
24시간 거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장만 열어두는 것이 아니라, 거래될 ‘상품’의 매력도와 접근성을 높여야 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주식의 토큰화(Tokenization)’입니다.
고가 우량주의 진입 장벽 해소
한 주당 가격이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고가 우량주는 일반 개인 투자자나 소액 자금을 운용하는 글로벌 투자자에게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24시간 거래 시스템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이러한 고가 주식을 잘게 쪼개어 토큰 형태로 거래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소수점 거래의 일반화: 기존의 소수점 거래가 증권사의 장부상 처리에 의존했다면, 토큰화된 주식은 블록체인상에서 명확한 소유권을 가지고 실시간으로 거래됩니다.
유동성 폭발: 1주를 100개, 1000개의 토큰으로 분할함으로써 소액 투자자들의 유입을 유도하고, 이는 곧 시장 전체의 거래 대금 증가와 유동성 확대로 이어집니다.
글로벌 호환성: 토큰화된 증권(ST)은 국가 간 경계를 넘어 거래되기에 용이한 표준을 가질 수 있어, 해외 투자자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입니다.
한국의 현실: 노조 반대와 규제의 늪,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일본이 민관 합동으로 질주하는 동안, 한국의 상황은 복잡합니다. 금융당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야간 거래 확대와 ATS(대체거래소)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장의 반발과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노조의 반대와 ‘워라밸’ 딜레마
제목에서 언급했듯, 한국 금융권 노조는 거래 시간 연장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해 왔습니다. 주된 이유는 ‘노동 강도 심화’와 ‘삶의 질 저하’입니다. 이는 타당한 우려입니다. 기존의 인력 중심 시스템에서 거래 시간만 늘린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증권사 직원들과 전산 담당자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입니다.
일본 사례가 주는 시사점: 기술을 통한 해결
여기서 일본의 접근 방식에 주목해야 합니다. 일본은 단순히 ‘사람을 더 오래 근무시키는 것’으로 24시간 거래를 구현하려 하지 않습니다. 블록체인과 스마트 콘트랙트(Smart Contract)를 통한 ‘업무 자동화’가 핵심입니다.
자동 대사 및 결제: 거래 체결과 동시에 결제가 완료되므로, 장 종료 후 밤새워 이루어지던 대사(Reconciliation) 업무가 사라집니다.
인력 운영의 효율화: 시스템이 신뢰를 담보하므로, 야간 감시 인력이나 정산 인력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즉, 한국도 거래 시간 연장을 위해서는 노조를 설득할 명분으로 ‘시스템의 고도화’와 ‘업무 자동화’를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사람이 갈려 들어가는 구조가 아닌, 기술이 사람을 돕는 구조로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한국 증권사와 관계 기관이 준비해야 할 과제
미국과 일본의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흐름입니다. 한국이 이 흐름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준비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법적·제도적 인프라의 정비 (STO 법제화)
현재 한국은 토큰 증권(STO) 발행 및 유통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었으나, 본격적인 법제화는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토큰 증권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이를 유통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 시장을 제도권 내로 빠르게 포섭해야 합니다.
② 결제 시스템의 블록체인 도입 (예탁결제원의 혁신)
일본의 사례처럼 예탁결제원과 한국은행, 그리고 시중은행이 협력하여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혹은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활용한 즉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현재의 T+2 결제 시스템은 글로벌 표준인 T+1, 더 나아가 T+0(실시간) 흐름에 뒤처져 있습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③ ATS(대체거래소)의 성공적 안착과 차별화
곧 출범할 예정인 대체거래소(Nextrade)가 단순히 수수료 경쟁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정규 거래소와 차별화된 ‘야간 시장’, ‘토큰 증권 시장’, ‘비상장 주식 거래’ 등 틈새시장을 공략하여 24시간 거래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④ 고가 주식의 액면분할 및 토큰화 유도
삼성전자와 같이 액면분할을 통해 국민주가 된 사례를 확산시켜야 합니다. 기업들에게 토큰 증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투자자들에게는 고가 주식에 대한 접근성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이는 부동산, 미술품 등 조각 투자의 영역을 주식 시장으로 확장하는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기술적 난제와 해결 방안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24시간 거래와 블록체인 도입에는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들이 존재합니다.
처리 속도(TPS) 문제: 블록체인은 기존 중앙화 서버 방식에 비해 처리 속도가 느릴 수 있습니다. 초단타 매매(HFT)가 빈번한 주식 시장에서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프라이빗 블록체인’과 ‘오프체인(Off-chain)’ 기술을 적절히 혼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보안 및 해킹 위험: 24시간 열려 있는 시장은 해커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양자 내성 암호(PQC) 등 차세대 보안 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하여 시스템의 무결성을 증명해야 합니다.
글로벌 유동성 연동: 한국만의 독자적인 코인이나 시스템을 고집할 경우 ‘디지털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 미국, 유럽 등과 상호 운용성(Interoperability)을 갖춘 표준을 채택하여 글로벌 유동성이 한국 시장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혁신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
일본의 메가뱅크와 증권사 연합이 보여주는 행보는 매우 위협적이면서도 동시에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입니다. 그들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통해 비용 절감, 편의성 제고, 그리고 글로벌 자본 유치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장이 단순히 “노조가 반대해서”, “시스템이 복잡해서”라는 이유로 머뭇거리는 사이, 글로벌 자본은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도쿄와 뉴욕으로 떠날 것입니다. 이제 한국도 노동 방식의 변화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노동의 질을 개선하고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금융 당국의 과감한 규제 혁파와 증권사들의 선제적인 기술 투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입니다.
참고자료
닛케이(Nikkei), “일본 3대 메가뱅크-증권사, 주식 디지털 결제 실증 실험”, 2026. https://asia.nikkei.com/
금융위원회, “토큰 증권(STO)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 2023. https://www.fs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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