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 주식의 탐욕과 중독의 덫 강민은 자신이 벌인 파멸의 현실이 더 이상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무게임을 깨달았다. 새벽 시장의 패배자라는 꼬리표는 이제 그의 가장 소중한 관계마저 파괴할 준비를 마쳤다. 강제 청산 후 남은 추가 빚과 잃어버린 모든 것을 가족에게 고백해야 하는 순간. 그가 직면한 것은 깨어진 신뢰와 관계의…
by Gemini
1994년 출범한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는 금융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운이 좋았던 트레이더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수학적 엄밀함과 통계적 확신을 무기로 전 세계 자본 시장의 미세한 틈새를 공략한 금융의 정복자들이었습니다.
설립 후 약 4년간 이들이 보여준 성과는 월스트리트를 넘어 전 세계 금융권을 경악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LTCM이 어떻게 시장의 변동성을 수익으로 전환했는지, 그들이 누렸던 찬란한 영광의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메커니즘을 살펴보겠습니다.
LTCM이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한 1994년, 금융 시장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인상하면서 채권 가격이 폭락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LTCM은 첫해에만 수수료를 제외하고도 20%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1995년에는 43%, 1996년에는 41%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하며 전 세계 모든 헤지펀드 중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습니다.
이러한 수익률이 더욱 놀라웠던 이유는 그것이 시장 중립(Market Neutral) 전략을 통해 달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시장이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이 오직 자산 간의 상대적 가격 차이에서만 수익을 낸다는 원칙은 투자자들에게 “위험 없는 수익”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당시 월가 사람들은 LTCM을 가리켜 10센트 동전을 줍는 진공청소기라고 불렀습니다.
아주 작은 차익을 무수히 반복해서 거두어들이는 모습이 흡사 기계처럼 정교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성공은 단순한 숫자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과 대형 은행 CEO들이 존 메리웨더의 전화 한 통을 기다릴 정도로 그들의 위상은 높았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설계한 알고리즘이 현실 세계의 돈을 무한정 복사해 내는 듯한 광경은 현대 금융 자본주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정점으로 보였습니다.
LTCM의 영광을 지탱한 가장 강력한 기둥은 바로 레버리지(Leverage)였습니다.
이들은 수렴 거래의 특성상 기대 수익률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0.1%의 차익을 노리는 거래에서 의미 있는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투자 규모를 수백 배로 키워야 했습니다.
LTCM은 약 40억 달러의 자기자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포지션 규모는 1,250억 달러에 달했으며, 파생상품 거래를 포함한 장외 계약의 명목 가치는 1조 달러가 넘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레버리지가 가능했던 이유는 시장이 그들을 무한히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투자은행들은 LTCM에 자금을 대출해주면서 담보를 거의 요구하지 않거나, 통상적인 수준보다 훨씬 낮은 마진(증거금)을 적용했습니다.
“천재들이 운영하는 펀드가 설마 망하겠느냐”는 맹목적인 믿음이 시스템 전체에 퍼져 있었습니다.
레버리지는 양날의 검이지만, 영광의 시기에는 오직 수익의 증폭기 역할만을 수행했습니다.
미세한 금리 차이가 모델대로 좁혀질 때마다, 레버리지는 그 미미한 이익을 거대한 배당금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파트너들은 막대한 보너스를 챙겼고, 투자자들은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에 감탄하며 더 많은 돈을 맡기려 줄을 섰습니다.
초기에 채권 시장에서 시작된 LTCM의 전략은 점차 주식, 외환, 국가 간 스프레드 거래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들은 이탈리아 국채와 독일 국채 사이의 금리 격차를 분석하고, 기업 매수 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가 왜곡을 사냥했습니다.
그들의 컴퓨터 모델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금융 자산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변동성 매도 전략은 그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시장이 평온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이 전략은 평상시에는 꾸준한 프리미엄을 수익으로 가져다줍니다.
LTCM은 시장의 공포가 과도하다고 판단될 때마다 변동성을 팔아치웠고, 시장이 다시 안정을 찾을 때마다 막대한 이익을 확정 지었습니다.
이 시기 LTCM은 사실상 전 세계 금융 시장의 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이 매수 포지션을 취하면 가격이 오르고, 매도 포지션을 취하면 가격이 내릴 정도로 영향력이 컸습니다.
시장의 비효율성을 제거한다는 명분 아래 그들은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전 세계의 자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지속적인 성공은 LTCM 파트너들에게 위험한 오만을 심어주었습니다.
마이런 숄즈와 로버트 머턴은 자신들의 수학 모델이 인간의 감정과 군중 심리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과거 수십 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10시그마 밖의 사건, 즉 발생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건은 무시해도 좋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들은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자신들의 전략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우리의 포트폴리오는 전 세계에 분산되어 있어 특정 지역의 위기에 안전하다”거나 “상관관계 분석을 통해 리스크를 완벽하게 상쇄했다”는 주장이 반복되었습니다.
심지어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LTCM은 일시적인 수익 하락을 겪었지만, 곧 회복하며 “위기는 오히려 기회”라고 자신만만해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장의 일부가 아니라, 시장 위에 군림하는 설계자라고 착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신봉하던 역사적 데이터는 오직 정상적인 시장 상황만을 가정하고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맹점이었습니다.
1997년 말, LTCM의 자산 규모는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너무나 커진 덩치 때문에 이제는 본인들의 거래 자체가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이는 차익 거래자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남들이 모르는 틈새를 찾아야 하는데, 자신들이 움직이는 순간 그 틈새가 닫혀버리거나 오히려 더 벌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익률이 정체되기 시작하자 그들은 더 위험한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안전한 채권 차익 거래를 넘어, 주식 시장의 방향성에 베팅하거나 신흥국 시장의 위험한 채권에 손을 댔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전략의 다변화라고 불렀지만, 실상은 정체된 수익률을 보전하기 위한 리스크의 확대였습니다.
천재들은 자신들의 모델이 지시하는 수치만을 믿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정치적 격변이나 인간의 공포가 어떻게 금융 공학적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영광의 시대는 그렇게 소리 없이 저물고 있었고, 러시아라는 거대한 폭풍이 수평선 너머에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참고자료
Nicholas Dunbar, “Inventing Money: The Story of Long-Term Capital Management and the Legends Behind It”, Wiley, 2000.
Andre F. Perold, “Long-Term Capital Management, L.P. (A)”, Harvard Business Review, 1999.
정태우, “금융공학의 명암: LTCM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금융연구원, 2005.
“The LTCM Crisis”, Federal Reserve History, https://www.federalreservehistory.org/
현대 금융 공학의 정점이라 불리던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의 몰락은 단순히 한 헤지펀드의 파산을 넘어선 사건이었습니다. 이 금융…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수학적 공식으로 치환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전 세계…
미국 주식 상장폐지 사유 및 절차 요약 정리 미국 주식 시장(NYSE, NASDAQ)은 전 세계 자본이…
위험은 ‘기술’이 아니라 ‘오해’에서 온다 위험은 ‘기술’이 아니라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많은 은퇴 투자자분들께 기술주는 여전히…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운율은 비슷하게 흐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을 뜨겁게 달궜던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