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금융 공학의 정점이라 불리던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의 몰락은 단순히 한 헤지펀드의 파산을 넘어선 사건이었습니다. 이 금융 사건은 인간의 지성이 오만과 결합했을 때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1998년 여름부터 시작된 이들의 비극은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습니다. 이번 마지막 시리즈에서는 철옹성 같던 LTCM의 수학적 요새가 어떻게…
by Gemini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수학적 공식으로 치환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서는 현대 금융 공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의 탄생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투자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학문적 권위와 실전의 노련함이 결합한, 이른바 ‘천재들의 드림팀’이었습니다.
오늘은 3편의 시리즈 중 첫번째로 이 전설적인 헤지펀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야망과 도전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LTCM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존 메리웨더라는 인물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당시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은행이었던 살로몬 브라더스의 채권 거래 부문을 이끌던 인물이었습니다.
메리웨더는 일반적인 트레이더들과는 사고방식부터가 달랐습니다.
그는 시장의 흐름을 본능이나 직관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철저하게 통계와 확률에 근거한 매매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그가 살로몬 브라더스에서 운영하던 차익거래 부서는 회사 전체 이익의 상당 부분을 책임질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1991년 발생한 국채 입찰 부정 사건으로 인해 메리웨더는 정들었던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야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던 과학적 투자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따르던 최고의 인재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LTCM이라는 거대한 서사시의 첫 페이지였습니다.
메리웨더는 단순히 돈을 잘 버는 트레이더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장의 본질적인 원리를 규명할 수 있는 학문적 배경을 가진 이들을 갈구했습니다.
그는 금융 시장이 무질서해 보여도 결국은 특정한 수학적 질서 체계 안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념은 당시 학계에서 명성을 떨치던 노벨 경제학상 후보군 학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메리웨더가 구성한 팀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단연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와 로버트 머턴(Robert Merton) 교수였습니다.
이들은 현대 옵션 가격 결정 모델의 기초인 블랙-숄즈 모델을 정립한 장본인들로, 금융 경제학 분야에서는 살아있는 신화와 다름없었습니다.
이들이 헤지펀드에 직접 파트너로 참여한다는 소식은 전 세계 금융권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숄즈와 머턴의 합류는 LTCM에 단순한 명성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들은 시장의 변동성을 수치화하고, 자산 간의 상관관계를 공식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시장의 가격이 일시적으로 왜곡될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내재 가치 혹은 역사적 평균치로 회귀한다는 확고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이 천재 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실전에서도 완벽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들에게 금융 시장은 거대한 실험실이었고, 컴퓨터 모델은 승리를 보장하는 연금술사의 도구였습니다.
학계의 정점에 있던 이들이 실물 경제의 야생으로 뛰어든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자신들의 지적 유희가 수조 원의 이익으로 치환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LTCM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들고 나온 핵심 전략은 수렴 거래였습니다.
이는 매우 정교하면서도 논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발행된 지 얼마 안 되어 유동성이 높은 국채(On-the-run)와 발행된 지 오래되어 유동성이 낮은 국채(Off-the-run) 사이에는 미세한 가격 차이가 발생합니다.
이론적으로 두 채권의 신용도는 동일하므로 이 가격 차이는 결국 사라져야 합니다.
LTCM은 이 미세한 차이를 포착했습니다.
가격이 비싼 쪽을 팔고, 싼 쪽을 사는 방식으로 포지션을 구축한 뒤 두 가격이 하나로 만날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시장은 비효율적인 곳이었지만, 그 비효율은 반드시 수정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채권뿐만 아니라 국가 간 금리 차, 주식 스왑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미세한 차익이 너무나 작다는 점이었습니다.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들은 레버리지라는 위험한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적은 자본금으로 수십 배, 수백 배의 자금을 빌려 투자 규모를 키우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그들의 논리는 완벽했습니다.
“우리의 모델에 따르면 파산할 확률은 100만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다. 따라서 레버리지는 위험이 아니라 효율성이다.”라는 오만한 확신이 팀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LTCM은 설립 직후 단숨에 13억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모았습니다.
일반 개인 투자자가 아닌, 전 세계 내로라하는 중앙은행, 연기금, 대학 기금,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앞다투어 돈을 맡겼습니다.
그들에게 LTCM은 투자처가 아니라 수익을 제조하는 공장처럼 보였습니다.
투자은행들은 LTCM과 거래하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심지어 많은 은행이 LTCM에 자금을 빌려주면서도 일반적인 담보 비율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운영하는 펀드라는 후광은 냉철해야 할 금융 시장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수식의 난해함을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식이 가져다줄 결과물에는 열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LTCM은 폐쇄적이고 신비주의적인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자신들의 구체적인 매매 기법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투자자들에게는 높은 수수료를 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금은 끊이지 않고 흘러 들어왔습니다.
이는 인간이 가진 권위에 대한 복종과 공짜 점심에 대한 갈망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기이한 현상이었습니다.
1994년 초반, LTCM이 본격적으로 돛을 올렸을 때 거시 경제 환경 또한 그들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냉전 종식 이후 전 세계 금융 시장은 통합되고 있었고, 파생상품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모델이 활약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무대였습니다.
초기 몇 년 동안 LTCM은 시장의 소음 속에서 조용히 승전보를 울렸습니다.
그들의 컴퓨터 시스템은 24시간 내내 전 세계 시장을 감시하며 미세한 균열을 찾아냈고, 그 균열이 메워질 때마다 막대한 이익을 계좌에 쌓아 올렸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시장을 정복한 승리자였으며, 금융의 미래를 새로 쓰는 개척자로 칭송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신봉하던 과거 데이터에는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극단적인 예외 상황, 즉 검은 백조(Black Swan)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성벽을 쌓았다고 믿었지만, 그 성벽 밑바닥에는 인간의 광기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프롤로그 EP.2 황금기
참고자료
로저 로웬스타인, “천재들의 실패(When Genius Failed)”, 승산, 2008. (원작: Random House, 2000)
하이먼 민스키, “금융위기 사이클(Stabilizing an Unstable Economy)”, McGraw-Hill, 2008.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The Black Swan)”, 동녘사이언스, 2008.
“The Rise and Fall of Long-Term Capital Management”, Harvard Business School Case Study, 2000. https://www.hbs.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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