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차기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를 둘러싸고 월가와 전 세계 금융 시장은 그를 과거의 행적에 비추어 강력한 ‘매파(Hawk)’로 규정하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의 공포는 워시가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인공지능(AI) 혁명에 따른 구조적 디스인플레이션 효과와 그가 구상하는 통화 정책의 본질을 간과한 채, 과거의 ‘양적 완화(QE) 반대’ 이력에만 매몰된 단편적인 해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 글은 케빈 워시가 바라보는 AI 기반의 ‘공급 측면 경제학’과 그에 따른 금리 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심층 분석함으로써, 그가 단순한 긴축론자가 아닌 기술 혁신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유형의 통화 정책가임을 규명하고자 합니다.
케빈 워시의 경제 철학: 양적 완화(QE) 비판과 금리 정책의 분리
금융 억압(Financial Repression)에 대한 저항과 시장 기능의 회복
시장이 케빈 워시를 매파로 분류하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그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벤 버냉키 의장 시절 시행되었던 대규모 양적 완화 정책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반대한 대상이 ‘낮은 금리’ 자체가 아니라, 중앙은행이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대량으로 매입하여 장기 금리를 인위적으로 누르는 ‘시장 가격 왜곡’ 행위였다는 점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워시는 중앙은행이 ‘최후의 대부자’를 넘어 ‘최후의 시장 조성자’로 나서서 자산 가격을 부양하는 행위가 금융 시장의 자생력을 해치고, 자본이 생산적인 실물 경제가 아닌 자산 시장의 거품을 키우는 데 쓰이게 만든다고 봅니다. 즉, 그의 반대는 긴축을 위한 긴축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핵심인 ‘가격 발견 기능’을 중앙은행이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시장주의적 철학에 기반합니다.
유동성 중독과 좀비 기업의 양산 문제
워시는 장기간 지속된 양적 완화가 한계 기업(좀비 기업)의 수명을 인위적으로 연장시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갉아먹었다고 분석합니다. 금리가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중앙은행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낮게 유지될 때, 자본은 혁신적인 기술 기업이나 인프라 투자(CAPEX)로 흐르기보다는, 기존 기업의 자사주 매입이나 부동산 투기 등 비생산적인 영역으로 쏠리게 됩니다. 따라서 워시가 양적 완화를 반대하는 것은 금리를 무작정 올려 경기를 죽이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자본 배분의 효율성을 정상화하여 경제의 기초 체력을 키우겠다는 구조 개혁의 의지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는 그를 단순한 ‘고금리 선호자’로 치부할 수 없는 강력한 논리적 근거가 됩니다.
AI 혁명과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공급 주도 디스인플레이션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과 공급 주도 디스인플레이션의 차이
전통적인 경제학, 특히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에 의존하는 구시대적 관점에서는 경제가 성장하고 실업률이 낮아지면 필연적으로 임금이 상승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봅니다. 제롬 파월 현 의장을 비롯한 기존 연준 위원들이 고용 지표에 과도하게 집착하며 금리 인상 시기를 저울질했던 것도 이러한 수요 견인(Demand-Pull) 인플레이션 모델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케빈 워시는 현재의 경제 상황을 완전히 다른 시각, 즉 ‘공급 주도(Supply-Side)’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AI와 같은 파괴적 혁신 기술이 전 산업에 도입되면서 생산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것이 구조적인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AI, ‘무어의 법칙’을 실물 경제로 확장하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은 지난 수십 년간 IT 하드웨어의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었습니다. 워시는 생성형 AI의 등장이 이러한 디플레이션 효과를 소프트웨어, 서비스, 전문직 업무, 제조 공정 등 경제 전반으로 확장시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업들이 AI를 통해 코딩, 법률 검토, 데이터 분석, 고객 응대 등의 업무를 자동화하면 단위 노동 비용(Unit Labor Cost)은 급격히 하락합니다. 생산 비용의 하락은 곧 최종 재화와 서비스 가격의 안정으로 이어지며, 이는 경제가 고성장을 구가하더라도 물가는 오르지 않는 ‘골디락스(Goldilocks)’ 환경을 조성합니다. 워시에게 있어 AI는 단순한 테마주가 아니라,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1990년대 앨런 그린스펀의 ‘생산성 가설’과의 평행이론
케빈 워시의 현재 입장은 1990년대 중반, 인터넷 혁명이 시작되던 시기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보여주었던 통찰력과 매우 유사합니다. 당시 대다수의 연준 위원들은 실업률이 하락하자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금리 인상을 주장했으나, 그린스펀은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이 향상되어 인플레이션 없이 고성장이 가능하다”며 금리 인상을 자제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10년에 걸친 장기 호황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워시 역시 AI가 가져올 생산성 혁명을 확신하며, 과거의 데이터에 얽매여 섣불리 금리를 올려 성장의 싹을 자르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는 AI가 창출할 ‘긍정적 공급 충격(Positive Supply Shock)’을 극대화하기 위해, 금융 환경을 긴축적으로 가져가기보다는 실물 투자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큽니다.
워시 체제의 통화 정책 시나리오: ‘매파적 완화’의 역설
명목 금리와 실질 금리의 괴리 축소
워시가 AI로 인한 디스인플레이션을 확신한다면, 이는 곧 금리 인하의 가장 강력한 명분이 됩니다. 경제학의 피셔 방정식(명목 금리 = 실질 금리 + 기대 인플레이션)을 상기해 봅시다. 만약 AI 혁명으로 인해 기대 인플레이션이 하락하는데 명목 금리(기준 금리)를 현재의 높은 수준(예: 4~5%대)으로 유지한다면, 기업과 가계가 체감하는 실질 금리는 오히려 상승하게 됩니다. 이는 의도치 않게 경기를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따라서 워시는 ‘긴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떨어진 물가 상승률에 맞춰 명목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논리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양적 완화에는 반대하면서도, 기준 금리 인하에는 적극적일 수 있는 논리적 배경입니다.
대차대조표 축소(QT)와 금리 인하의 정책 조합(Policy Mix)
워시가 이끌 연준의 정책 조합은 기존과는 사뭇 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는 시장을 왜곡하는 대차대조표(연준의 자산 보유)는 공격적으로 축소(QT)하여 장기 금리의 시장 결정 기능을 회복시키는 한편, 단기 기준 금리는 과감하게 인하하여 기업들의 AI 투자와 혁신 활동을 지원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유동성은 줄이되(QT), 자금 조달 비용은 낮추는(Rate Cut)” 전략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혼란스러워할 수 있으나, 이는 금융 자산의 거품을 제어하면서 실물 경제의 성장을 지원하는 가장 정교하고 이상적인 정책 조합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그는 자산 시장(월스트리트)에는 매파적이지만, 실물 경제(메인스트리트)에는 비둘기파적인 태도를 취할 것입니다.
포워드 가이던스의 변화와 데이터 의존성 탈피
워시는 연준이 시장에 지나치게 친절한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안내)’를 제공함으로써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것에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는 1980년대 폴 볼커처럼 원칙에 충실하되, 데이터의 후행성에 매몰되지 않는 통찰력 있는 결정을 내리려 할 것입니다. 특히 지난달의 CPI(소비자물가지수)나 고용 지표와 같은 후행 지표보다는, 기업들의 자본 지출(CAPEX) 계획, AI 도입 속도, 생산성 지표 등 선행적이고 구조적인 데이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금리를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연준의 정책 결정 속도가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선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AI가 불러올 디스인플레이션 징후가 포착되는 순간, 그는 주저 없이 금리 인하 버튼을 누를 것입니다.
편견을 버리고 ‘워시 풋(Warsh Put)’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비하라
케빈 워시를 단순히 ‘양적 완화 반대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파로 낙인찍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격입니다. 그는 기술 혁신이 경제 구조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지 이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테크노크라트’형 중앙은행가입니다. 그가 경계하는 것은 건전한 경제 성장이 아니라, 중앙은행의 돈 풀기에 의존한 병적인 자산 가격 상승입니다.
AI가 주도하는 생산성 혁명은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제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지원군이며, 워시는 이를 근거로 금리를 인하하여 기업들이 마음껏 혁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연준이 돈을 풀어 주가를 부양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Fed Put)를 버리고, ‘연준이 저금리 환경을 만들어 줄 때, 어떤 기업이 AI를 통해 실질적인 이익을 낼 것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워시의 시대는 유동성 장세의 종말인 동시에, 실적 장세와 생산성 장세의 화려한 개막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매파 워시’라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혁신가 워시’가 열어갈 새로운 골디락스 경제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참고자료
Bloomberg Intelligence. (2026.01.28). “Fed Nominee Warsh’s Track Record: Anti-QE but Pro-Growth?”, https://www.bloomberg.com/
Financial Times. (2025.12.15). “Why the Bond Market Feared Warsh, and Why They Might Be Wrong”, https://www.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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