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러시아의 경제적 공생의 파멸과 외교 정책의 치명적 오류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현재의 글로벌 위기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세계대전부터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낙관론이 어떻게 처참한 안보 위기로 변모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본 글은 이러한 갈등의 기저에 깔린 경제적 요인과 외교적 실책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지속 가능한 평화와 안보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경제적 경쟁과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
19세기 말,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는 산업화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유럽의 ‘빵바구니’ 역할을 수행했으며, 프랑스와 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철도 건설과 산업화를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자했습니다. 1890년대 중반, 러시아 외채의 약 80%가 프랑스 자본이었다는 사실은 당시 경제적 밀착도를 잘 보여줍니다.
자본의 흐름과 지정학적 야망의 충돌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결속은 평화를 담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러시아의 급격한 성장은 기존 유럽의 패권국이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독일은 러시아의 농산물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며 경제적 압박을 가했고, 러시아는 이에 맞서 범슬라브주의를 앞세워 발칸 반도의 경제적 주도권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당시 유럽 외교 정책의 치명적 오류는 ‘경제적 상호의존이 국가의 생존 본능을 억제할 수 있다’는 과신에 있었습니다. 비밀 외교를 통해 맺어진 복잡한 동맹 체제는 경제적 이익보다 군사적 명분을 우선시하게 만들었습니다. 1914년 사라예보 사건 이후, 수십 년간 쌓아온 경제적 네트워크는 단 몇 주 만에 붕괴되었고, 유럽은 자국 자본이 투자된 러시아의 철도를 타고 온 군대와 싸워야 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전후 경제적 단절과 불신의 씨앗
전쟁 이후 베르사유 체제는 러시아(소련)를 국제 경제 질서에서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혁명 이후 들어선 볼셰비키 정권이 외채 상환을 거부하자, 유럽 열강은 경제 봉쇄로 응수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고립은 러시아로 하여금 서구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갖게 했으며, 이는 훗날 제2차 세계대전의 전조가 되는 독자적인 군사 공업화(5개년 계획)로 이어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자원 확보를 위한 광기와 유화 정책의 실패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짧은 평화기는 경제적 민족주의와 대공황으로 인해 무너졌습니다. 나치 독일의 등장은 유럽과 러시아(소련)의 관계를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히틀러의 ‘레벤스라움(Lebensraum, 생존권)’ 개념의 핵심은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와 코카서스의 유전을 확보하여 독일의 경제적 자급자족을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독소 불가침 조약의 경제적 이면
1939년의 독소 불가침 조약은 흔히 군사적 야합으로만 해석되지만, 그 이면에는 거대한 경제적 거래가 있었습니다. 독일은 소련에 정밀 기계와 기술을 제공하고, 소련은 독일의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원유, 곡물, 망간 등을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외교 정책은 이러한 경제적 결합의 위험성을 간과했습니다. 그들은 히틀러를 소련과 싸우게 함으로써 서구 민주주의를 보호하려 했던 ‘방관적 유화 정책’을 펼쳤으나, 이는 도리어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을 극대화해주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전쟁의 전환점과 랜드리스(Lend-Lease)의 경제학
독일의 배신으로 시작된 독소 전쟁에서 유럽의 운명을 가른 것은 다시 한번 경제적 지원이었습니다. 미국의 랜드리스 법안을 통해 전달된 막대한 물자는 소련군이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연합국 내부에서는 전후 경제 패권을 둘러싼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서구는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해 경제 원조를 중단하기 시작했고, 이는 냉전이라는 긴 터널의 입구가 되었습니다.
냉전기 ‘동방정책’과 가스관 정치의 탄생
냉전이 고착화되던 1960년대 후반,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동방정책(Ostpolitik)’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습니다. 이는 “무역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Handel)”라는 철학에 기반한 것으로, 경제적 교류를 통해 정치적 긴장을 완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1970년 ‘가스관-철강’ 딜의 역사적 의미
1970년, 서독은 소련에 가스관 건설을 위한 철강 파이프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소련의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역사적인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것이 현재 유럽이 겪고 있는 에너지 의존의 시초입니다. 당시 유럽 외교관들은 이를 상호 이익을 증진하는 평화의 도구로 보았습니다. “가스를 파는 나라는 가스를 사는 나라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수십 년간 유럽 안보 전략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에너지 의존의 구조화와 안보적 맹점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러시아(소련)에게 강력한 외교적 지렛대를 제공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소련은 에너지 수출 대금으로 군사력을 증강했고, 유럽은 값싼 에너지의 유혹에 빠져 대체 에너지원 확보와 안보 다변화를 소홀히 했습니다. 경제적 이익이 안보적 리스크를 가려버린 것입니다. 이는 훗날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했을 때 유럽이 대응력을 상실하게 만든 결정적인 외교적 실책이었습니다.
포스트 냉전과 푸틴 시대: 경제적 공생의 환상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유럽은 러시아가 서구식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유럽 기업들은 러시아 시장으로 대거 진출했고, 러시아의 재벌(올리가르히)들은 런던과 파리의 부동산을 사들였습니다.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과 독일의 오판
독일은 러시아와의 직접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 1과 2를 추진하며 경제적 결속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특히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에도 노르트스트림 2 사업을 강행한 것은 유럽 외교 정책의 가장 뼈아픈 실책 중 하나로 꼽힙니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지정학적 야망을 ‘비즈니스적 요구’로 과소평가했습니다.
러시아는 이 시기 유럽에 대한 에너지 점유율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유럽은 러시아의 현금이 자신들의 시스템을 지탱한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가 유럽의 에너지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상호 의존’은 어느덧 ‘일방적 종속’으로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렌티어 국가(Rentier State) 러시아의 부활
푸틴 정권은 고유가 시대를 틈타 자원 수출 대금으로 국가 재정을 재건하고 군대를 현대화했습니다. 러시아 경제가 에너지 수출에 극도로 의존하는 구조가 되면서, 역설적으로 푸틴은 대외 팽창을 통해 자원 가격을 조절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유인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럽은 러시아를 ‘정상적인 무역 파트너’로 대우했으나, 러시아는 경제적 수익을 ‘제국 부활의 군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무너진 경제적 낙관론과 혹독한 대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이 수십 년간 고수해 온 대러 외교 정책의 완전한 파산을 선언한 사건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밀접하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리버럴리즘의 가설은 탱크의 궤도 아래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에너지 무기화와 유럽의 경제적 충격
전쟁 발발 후 러시아는 가스 밸브를 잠그며 유럽을 압박했습니다. 유럽은 갑작스러운 에너지 가격 급등과 인플레이션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는 에너지 안보를 외교의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했던 과거의 안일함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독일의 경우, 가스 공급 중단으로 인해 화학 및 철강 등 핵심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디커플링(Decoupling)과 새로운 냉전의 경제학
현재 유럽은 러시아와의 경제적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는 ‘디커플링’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자산을 동결하고, SWIFT 결제망에서 배제하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하는 전례 없는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유럽에게도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유럽 대신 중국과 인도 등으로 수출 노선을 다변화하며 ‘글로벌 사우스’와의 결속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경제가 블록화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유럽은 이제 러시아라는 값싼 자원 공급처 없이 미국이나 중동에 의존해야 하는 전략적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외교 정책의 문제점 심층 분석: 왜 실패했는가?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를 관통하는 외교적 실패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지적 부조화와 낙관주의 편향
유럽 리더들은 러시아를 자신들의 가치관으로 투사하여 해석했습니다. 러시아 역시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는 믿음은, 러시아 지도부가 가진 역사적 소명 의식과 지정학적 불안감을 간과하게 만들었습니다. ‘합리적 경제인’ 모델을 국가 간 외교에 무비판적으로 적용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었습니다.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 망각
경제적 통합이 안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착각은 군사력 약화로 이어졌습니다. ‘평화의 배당금’을 즐기며 국방비를 감축했던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무력 위협 앞에 무기력했습니다. 외교는 힘이 뒷받침될 때만 유효하다는 국제 정치의 기본 원리를 잊은 결과입니다.
동유럽 국가들의 경고 무시
폴란드와 발트 3국 등 러시아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국가들은 끊임없이 에너지 의존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서유럽, 특히 독일과 프랑스는 이를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힌 과민반응’으로 치부하며 무시했습니다. 내부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은 분열된 외교 전략이 러시아에게 틈을 보여주었습니다.
새로운 유럽 안보 질서를 향하여
유럽과 러시아의 갈등사는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깁니다. 경제적 교류가 평화의 문을 열 수는 있지만, 그것이 안보의 잠금장치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1차 세계대전의 비밀 외교, 2차 세계대전의 유화 정책, 그리고 현대의 에너지 종속은 모두 ‘적대적 상대의 의도를 장밋빛으로 해석한 외교적 오판’에서 기인했습니다.
앞으로 유럽이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합니다.
전략적 자율성 확보: 특정 국가, 특히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핵심 자원 의존도를 근본적으로 낮추어야 합니다.
안보와 경제의 통합: 이제 경제 정책은 곧 안보 정책입니다. 공급망 다변화와 핵심 기술 보호를 외교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원칙 있는 대화: 러시아와의 대화 창구는 유지하되, 국제법과 인권이라는 명확한 기준 위에서 타협 없는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에게 거대한 도전인 동시에, 지난 100년의 실책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합니다. 힘의 균형과 경제적 자립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모래성일 뿐입니다. 유럽이 이번 위기를 통해 더욱 단단한 통합 안보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Daniel Yergin. The New Map: Energy, Climate, and the Clash of Nations. Penguin Press. 2020
Adam Tooze. The Wages of Destruction: The Making and Breaking of the Nazi Economy. Penguin Press. 2008
Mark Leonard. The Age of Unpeace: How Connectivity Causes Conflict. Bantam Press. 2021
. Putin’s World: Russia Against the West and with the Rest. Twelve. 2019
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 “Energy Security and the Russia-Ukraine War“, https://www.iea.org
European Parliament Research Service, “Russia’s war on Ukraine: Background and perspectives”, https://www.europarl.europa.eu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