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산이 단순한 투자 수단을 넘어 국가의 화폐와 결제 시스템 전체를 지배하는 시대가 우리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 국가가 경제 시스템의 근간인 화폐와 투자를 블록체인으로 통째로 이전한다는 소식에 많은 분이 그 실현 가능성과 배경을 궁금해하십니다. 본 글에서는 세계 최초로 ‘풀 온체인’ 국가 경제를 선포한 버뮤다의 사례를 통해 블록체인 기반 국가 모델의 실체와 미래를 심층 분석하겠습니다.
버뮤다의 ‘풀 온체인(Fully Onchain)’ 선언: 세계 최초의 도전
2026년 1월, 전 세계 금융업계의 시선은 대서양의 작은 섬나라 버뮤다로 향했습니다. 버뮤다 정부는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서클(Circle) 및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와 손잡고 국가 경제 시스템 전체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하는 ‘풀 온체인(Fully Onchain) 국가 경제’ 계획을 공식 발표했습니다[1]. 이는 단순히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허용하는 수준을 넘어, 국가의 법정 화폐 기능을 디지털 자산으로 대체하고 모든 금융 거래와 투자 인프라를 블록체인 위에서 구동하겠다는 파격적인 시도입니다.
버뮤다가 이러한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18년부터 시행된 ‘디지털 자산 비즈니스법(DABA)’이라는 탄탄한 규제 프레임워크가 있었습니다. 버뮤다는 지난 수년간 엄격하면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디지털 자산 기업들을 유치해 왔으며, 이제 그 기술력을 국가 운영 시스템에 직접 이식하려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법정 화폐와 일대일로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인 USDC를 국가 결제 및 공공 서비스의 기본 단위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버뮤다 시민들은 중앙 집중화된 은행 서버가 아닌, 분산 원장 기술을 통해 실시간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복지 혜택을 받으며 기업 간 거래를 체결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투명성을 극대화하고 금융 중개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어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전략적 포석입니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실험: 5년의 기록과 교훈
블록체인 국가 시스템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나라는 단연 엘살바도르입니다. 2021년 9월, 엘살바도르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채택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2]. 도입 초기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우려와 시민들의 반대 시위 등 상당한 진통을 겪었으나, 도입 5년이 지난 현재 엘살바도르의 실험은 명암이 뚜렷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데이터에 따르면,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 도입 이후 해외 송금 수수료 절감 면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인구의 상당수가 해외에서 보내오는 송금에 의존하는 국가 특성상, 기존 금융망을 통할 때 발생하던 10~20%의 수수료를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1% 미만으로 낮춘 것은 서민 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비트코인 채굴을 위한 화산 에너지 개발 등 친환경 에너지 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하지만 ‘국가 시스템의 완전한 전환’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비트코인의 높은 가격 변동성은 일반 시민들이 일상적인 상거래에서 이를 전면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치보(Chivo)’ 지갑의 사용률이 초기 반짝 상승 이후 정체기에 접어드는 등 디지털 문해력 격차와 인프라 부족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버뮤다가 비트코인이 아닌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온체인 경제를 선택한 이유도 바로 엘살바도르의 이러한 변동성 리스크를 반면교사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마셜제도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실패에서 배우는 국가 디지털화
블록체인 도입을 시도했으나 좌절을 겪은 사례들도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태평양의 마셜제도는 2018년 ‘Sovereign Currency Act’를 통과시키며 알고랜드(Algorand) 블록체인 기반의 국가 디지털 화폐 ‘SOV’ 발행을 추진했습니다[3]. 그러나 IMF의 강력한 압박과 미국 달러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적 한계로 인해, 결국 2025년 8월 해당 법안을 폐지하며 실험을 공식적으로 중단했습니다. 이는 디지털 화폐 도입이 기술적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 정치 및 지정학적 역학 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 또한 2022년에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채택하고 ‘상고 코인(Sango Coin)’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낮은 인터넷 보급률과 불안정한 국내 정세로 인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태입니다[4]. 2026년 현재 상고 프로젝트는 기존의 야심 찬 계획을 대폭 수정하여 ‘자원 토큰화’라는 제한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블록체인 국가 전환을 위해서는 기술적 인프라 못지않게 국가의 제도적 역량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블록체인 국가 시스템의 3대 핵심 이점 분석
국가가 시스템 전체를 블록체인으로 옮겼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금융 포용성(Financial Inclusion)의 획기적 개선: 은행 계좌가 없는 인구도 스마트폰만 있다면 국가 금융 네트워크에 즉시 편입될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개발도상국이나 도서 지역 국가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됩니다.
행정 비용의 극단적 절감: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통해 복지 예산 집행, 조세 징수, 공공 계약 등이 자동화됩니다. 인간의 개입이 줄어들면서 행정 오류와 부패 가능성이 차단되고, 실시간 결산이 가능해져 국가 재정 운용의 효율성이 극대화됩니다.
글로벌 투자 유치의 새로운 통로: 국가 자산을 토큰화(Tokenization)함으로써 전 세계 투자자들이 소액으로도 해당 국가의 국채나 인프라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이는 전통적인 자본 시장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던 소규모 국가들에게 강력한 자금 조달 수단이 됩니다.
향후 전망과 해결해야 할 난제들
버뮤다의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버뮤다가 가진 ‘금융 선진국’으로서의 지위와 명확한 법적 토대가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코인베이스와 같은 대형 파트너사들이 인프라 구축을 전담하고, 규제 당국이 이를 밀착 지원하는 ‘민관 협력 모델’은 향후 다른 국가들이 벤치마킹할 표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기술적 안정성 확보와 사이버 보안 리스크는 여전히 큰 위협 요소입니다. 국가 시스템 전체가 온체인화된다는 것은 해킹 한 번에 국가 경제가 마비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인의 금융 거래 데이터가 블록체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보호될 것인지에 대한 프라이버시 문제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쟁점입니다.
결론적으로, 버뮤다의 이번 결정은 ‘블록체인 국가 2.0’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단순한 화폐 도입을 넘어 경제 시스템의 DNA 자체를 블록체인으로 재설계하려는 이 파격적인 실험은, 미래의 국가 운영이 어떤 모습일지를 미리 보여주는 거대한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1] Circle Press Room, “The Government of Bermuda Announces Plans to be the World’s First Fully Onchain National Economy with Support from Circle and Coinbase”, (2026.01.19). https://www.circle.com/
[2] Yale Insights, “El Salvador Adopted Bitcoin as an Official Currency; Salvadorans Mostly Shrugged”, (2024). https://insights.som.yale.edu
[3] Wikipedia, “Sovereign Currency Act of 2018 (Repealed Aug 2025)“, (2026.01.07). https://en.wikipedia.org/
[4] Modern Diplomacy, “Crypto Risks Threaten Central African Republic State Assets”, (2025.12.17). https://moderndiplomacy.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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